보도자료
가을 우음도(2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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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99년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이 기이한 돌멩이들을 발견했다. 학자들이 조사해보니 1억년 전 공룡 알 화석이 아닌가. 한 군데도 아니고 열두 군데에 알 둥지만 30개, 알은 200개가 넘었다. 갯벌 어디쯤에 또 숨어 있을지 모를 일이라, 2000년 정부는 이 일대를 천연기념물 414호로 지정하고 개발을 금지했다. 그게 자그마치 480만 평이다. 그리하여 시화 간척지 개발이 끝나도 공룡알 화석지 주변은 지금 그대로 원시적인 풍광을 유지하게 되었으니, 이 어인 조화인가. 죽음의 호수가 생명의 땅으로 부활하더니, 이윽고 아득한 태고(太古) 시대 깨지도 못하고 죽은 생명이 그 땅을 살린 것이다.
대개 사람들은 우음도에서 공룡알 화석지까지 이르는 3㎞ 풍경을 통틀어 우음도라 부른다. 아직 염분이 빠지지 않은 간척지에는 키 큰 삘기가 가득 자란다.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들이 자라나 곳곳에 버드나무가 서 있다. 흙길에 고라니가 나타나도 절대 놀라지 말 일이다. 비 내린 지 오래된 날에는 그 삘기 숲 사이로 들어갈 수 있으니, 천지 사방이 온통 기념사진에 예술사진 찍을 피사체들이다. 가을에는 그 풍경이 빛바랜 노란색으로 물이 들고 가끔은 새들이 기분 좋게 사진 배경도 되어준다. 맑은 가을도 좋고, 흐린 가을, 비 오는 가을, 바람 부는 가을은 더 좋다.
그러다 우음도로 가면 이러구러한 개발 과정에서 철거된 마을을 만나게 된다. 아직 보상 문제에 합의하지 않은 주민들이 있으니 나들이에 들떠 무작정 밝은 표정만 지을 수는 없겠다.
날이 맑다면, 딱 이 때가 해 질 녘이면 좋겠다. 가뜩이나 누런 세상에 하늘까지 누렇게 변하는 순간이다. 대한민국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낯선 적막과 낯선 낭만 속에서, 가슴속에 치미는 격한 감동을 맛볼 수 있는 순간이다. 그때에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. 치미는 그 가슴속을 참을 수 없어서 큰 울음 한번 터질 수도 있으니까.
관리자에 의해 2015-06-07 오후 4:09:11 에 이동되었습니다.